[김삼웅의 인물열전] 『의열지사』 박재혁 평전 공정하지 못한 건국훈장 독립장 -서훈의 격이 살신보국의 공훈에 크게 미치지 못해 >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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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의열지사』 박재혁 평전 공정하지 못한 건국훈장 독립장 -서훈의 격이 살신보국의 공훈에 크게 미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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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거비 조회 1,880회 작성일 2021-02-06 10:44:0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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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의열지사박재혁 평전 

공정하지 못한 건국훈장 독립장

-서훈의 격이 살신보국의 공훈에 크게 미치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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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박재혁 의사 박재혁 의사의 묘. ⓒ 개성고등학교 역사관 제공



의열지사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1945년 8월 15일 일제는 패망하고 조국은 해방이 되었다.  국가는 긴 세월 암흑에 묻혔던 순국선열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조명이 이루어졌다.

박재혁 의사도 그 중의 한 분이었다. 박 의사의 유해는 해방 후 부산 좌천동 공동묘지에서 정공단(鄭公壇)에 합사되었다가 1966년 4월 7일 국가보훈처에 의해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으로 이장하였다. 사후 반세기만에 혼령이나마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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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혁 의사 건국훈장 독립장 사본 박재혁 의사 건국훈장 독립장 사본 ⓒ 개성고등학교 역사관 제공 


정부는 이에 앞서 1962년 박재혁 의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하지만 서훈의 격이 박재혁 의사의 살신보국의 공훈에 비해 크게 미치지 못하였다. 연대별 주요 독립의열사들의 사건 일지와 훈격을 살펴보자.  

1. 안중근 의사 :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에서 이토 저격,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2. 박재혁 의사 : 1920년 9월 14일 부산경찰서장 하시모토 처단-의열단,(건국훈장 독립장)
 3. 최수봉 의사 : 1920년 12월 26일 밀양경찰서 폭탄투척-의열단,(건국훈장 대통령장)
 4. 나석주 의사 : 1926년 12월 28일 동척 폭탄투척 - 임정, 의열단,(건국훈장 대통령장)
 5, 이봉창 의사 : 1932년 1월 8일 일왕 마차에 폭탄투척 - 임정,(건국훈장 대통령장)
 6, 윤봉길 의사 : 1932년 4월 29일 홍구공원 일제요인 폭탄투척-임정,(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예시한 여섯 분의 의거는 하나 같이 일제침략 원흉을 저격하거나 폭살 또는 통치ㆍ수탈기관에 투탄한 독립운동사의 샛별과도 같은 투쟁이었다. 의사들의 살신보국으로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동포들의 독립정신을 크게 일깨웠다. 

당연히 해방된 조국에서는 의열사들에 최고의 영예와 훈격을 추서함으로써 민족정기의 맥을 잇고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옳다. 

이승만ㆍ박정희 정권기에 친일경력자들이 보훈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웃지못할 '역사의 만가'가 있었고, 그들의 손으로 진짜 독립운동가들은 훈격이 크게 낮아진 대신 이승만 추종자 중에는 최고훈장인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박재혁 의사의 훈격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평가가 따른다.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의열지사 박재혁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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