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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글 이병길] [부산경찰서 투탄 100주년] 의열단원 박재혁과 그의 친구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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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거비 조회 28회 작성일 2021-05-08 14:14:4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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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찰서 투탄 100주년] 의열단원 박재혁과 그의 친구들① 

의열단원 박재혁 의거 100주년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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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혁의사 동상 -부산어린이공원에 세워진 박재혁의사 동상
ⓒ 이병길


의열단원 박재혁과 그의 친구들

1. 부산경찰서 투탄, 의열단원 박재혁 의거 100주년이 되다

1920년 9월 14일 화요일. 전날부터 내렸던 가랑비는 오전까지 내리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그쳤다. 오후 2시 30분경 부산부 금평정 부산경찰서 앞에 조선옷을 입은 한 훤칠한 청년이 택시에서 내렸다. 경찰서 왼쪽에는 일본인 거류민단 사무소가 있었고, 계단 위쪽에는 부산 이사청이 있었다. 이 지역은 일제의 부산지역 지배와 침탈의 심장부였다. 


영화 '밀정'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중국인 복장을 한 청년이 중국 고서적을 팔기 위하여 경찰서로 들어간다. 그리고 책을 파는 척하다가, "나는 상해에서 온 의열단원이다. 네가 우리 동지를 잡아 우리 계획을 깨트린 까닭에 우리는 너를 죽이는 것이다." 


안전핀을 뽑아 던지자, 우레와 같은 폭음이 들리고 경찰서가 파괴되고 수명의 경찰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고 죽었다. 주변에는 의열단의 선언을 적은 전단이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신문보도를 보면 영화와 다르다. 조선옷을 입은 청년은 거침없이 경찰서로 들어갔다. 경비는 그 당당함에 제지를 하지 않았다. 3.1운동이 일어난 지 1년 6개월이 넘었지만 부산지역에는 뚜렷한 독립투쟁이 없었다.

경찰서는 2층 건물이었다. 1층에는 하시모토 경찰서장과 계원들이 있었다. 경찰서장과 안면이 있는 사내는 헝겊으로 쌓인 폭탄에 불을 붙이고자 했지만 잘 붙지 않았다. 당황하는 사이 폭탄 심지에 불이 붙자 황급히 서장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거리는 불과 1m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