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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혁 의사 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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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조회 1,086회 작성일 2022-05-13 13:01:2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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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혁 의사 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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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517일 부산 동구 범일동 183번지에서 독자로 출생하여 19113월 부산진사립육영학교(현 부산진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부산공립상업학교에 입학했습니다.

 

2학년 때 학우들과 동국역사책를 등사·배부하다 일경에 체포·구금되었고, 3학년 때 비밀지하독립단체인 구세단을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역시 일경에 체포되어 고초를 겪는 등 박의사는 재학 때부터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1915년 졸업 후 부산전기와사에 입사했으나 재학시절 독립운동 전력으로 퇴사 당하자 일반 회사는 취업을 할 수 없음을 알고, 친척이 운영하는 경북 왜관곡물무역상에 취업 중 주인으로부터 자금 700여원을 차용, 상해로 떠났습니다.

 

박재혁 의사는 먼 이국땅에서 열혈 독립운동가들과 교류를 통하여 독립운동에 더욱 큰 뜻을 가지고 의열단에 가입하여 의열단 단장 김원봉으로부터 부산경찰서를 폭파하라는 밀명을 받고 192096일 부산에 잠입했습니다.

 

박의사는 거사일일 914일로 잡고 전날 최천택 동지와 함께 부산경찰서가 잘 보이는 용두산공원에 올라 부산경찰서를 탐사하고, 하산길에 사진관에 들러 동지 최천택과 마지막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914일 오후 240분경 부산경찰서장 하시모토 슈헤이를 면담하는 자리에서 폭탄을 투척했으나 서장은 경상을 입고 오히려 박의사가 중상을 입고 말았습니다. 현장에서 체포되어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끝까지 단독범임을 주장했습니다.

 

한편 부산경찰서투탄의거에 연류되어 체포된 최천택, 오재영 등 6명은 1016일 무혐의로 풀려났습니다.

 

본 사건에 대해 112일 부산지방법원 공판에서 노다검사가 사형을 구형했으나 아오야마 재판장은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이에 구다 검사가 공소하여 19212142심인 대구복심법원에서 사형이 선고되자 박의사 쪽에서 공소를 제기하여 두 차례 공판이 있었으나 19213313심인 경성고등법원에서 최종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박의사는 왜놈 손에 욕보지 않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겠다는 의지로 단식을 감행, 192151111시경 옥중 순국하셨습니다. 이날 12시에 사형을 집행할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3·1독립운동이 실패로 끝나자 독립운동의 활로를 모색하든 차 무장투쟁단체인 의열단이 창단되었고, 의열단원인 박재혁의사가 성공한 부산경찰서 투탄의거가 되자 이후 전국에 산발적으로 이와 유사한 독립운동이 일어났으니 박의사의 의거는 꺼져가는 독립운동에 마중물 역할을 하였기에 대단히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1962년 정부는 박 의사께 독립장을 추서하고 1969년 국립묘지로 산소를 이장했습니다.

 

광복 후 19462월 의열단장 김원봉과 부산의 의열단원이 좌천동 공동묘지에 있던 박재혁의사 산소를 참배하였고, 1948년 최천택을 비롯한 부산진유지들이 뜻을 모아 박의사 기념비를 정공단에 건립하고, 이때부터 합사를 진행해오다 부산진초등학교 개교 70주년을 맞아 교정으로 이 기념비를 이전했습니다.

 

부산상고(현 개성고등학교)동창회에서는 박재혁의사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서면에서 당감동으로 학교를 옮길 때 그 자리에 박재혁의사 등 부산상고 출신 독립유공자 기념비를 세울 것을 롯데그룹 측과 협의했으나 결렬되고, 대신 자금을 지원받아 이 자리에 박재혁의사 동상을 1998년 건립하고 부산시에 기부채납 했습니다. 이후 삼일동지회가 주관이 되어 매년 서거일 511일 추모제를 거행해 왔습니다.

 

한편 부산동구청은 자성로 630m 거리를 박재혁거리로 명명하고 생가터 표지석, 동구출신 독립유공자 기림벽 등을 설립하고 독립유공자의 희생과 그 공을 기리고 있습니다.

 

아울러 2018년 부산지방보훈청에서는 부산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박의사를 포함한 6명의 기념우표를 발행하였고, 2018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에서는 동화 박재혁의사를 발간했으며, 20201월에는 부산중구청에서 옛 부산경찰서 터 표지석을 건립했습니다. 부산광역시교육청에서는 초·중학교 지역교과서에 박재혁의사의 독립운동을 소개하여 성장하는 학생들에게 독립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2019년 개성고등학교 총동창회에서는 박재혁의사 평전을 발행하였고, 박의사 모교 교정에 흉상을 건립하고, 역사관 내에 특별코너를 박재혁의사기념관을 건립하였습니다.

 

그리고 개성고등학교 총동창회가 중심이 되어 20205()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를 창단하여 박의사의 선양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습니다.

 

()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가 창립된 후 국제디자인제에 청년 박재혁을 말하다제하로 출품하였고, 박재혁의사의거 100주년기념식을 부산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거행했으며, 동년 10월에는 부산시민을 대상으로 박재혁을 노래하다초청음악회를 개최한 바 있습니다.

 

2021511일에는 박재혁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식을 이 자리에서 삼일동지회와 기념사업회가 공동주관으로 성대히 거행한 후, 순국 100주년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했으며, ‘의사 박재혁출판사업을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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