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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사업회] 박재혁 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자료집(요약본)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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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거비 조회 449회 작성일 2021-08-14 23:35:47 댓글 0

본문


학술회의 요약서


○발표일시 : 2021년 5월 12일 14:00-17:00 

○발표장소 :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6층 세미나실

주최/주관 : 사단법인 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

후원 : 국가보훈처 부산지방보훈청/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제1 주제발표 

구 분

학술회의 문헌발간

기관명

제 목

박재혁 의사 서거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부산

지방보훈

 

 

 

 

 

 

 

 

 

 

 

 

 

 

 

 

 

 

 

 

 

주 최

사단법인 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

사 업 일 시

2021.05.12.() 14:00~17:00

발표자/토론자

김영범/노상만

참석대상층

참석기관, 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 회원, 일반시민 학생

요 약 서

(학술논문내용)

의열단 및 의열단운동과 부산은 어떤 관계 속에 놓여 있었을까? 부산사람 중에는 어떤 이들이, 어느 시기에, 어떤 식으로 그 조직 및 운동에 참여했는가? 부산출신 의열단원 박재혁의 옥중 순국 100주년을 맞아 그의 의거를 되새겨보고 그 의미를 기념하는 자리가 여기 마련되었음을 빌려서이다. 그리하여 소박하게라도 그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해가는 것이 이 글의 목표이고 내용도 된다.

의열단 창립단원 10인 중에 부산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 물론 그 無緣은 만주로 간 부산청년이 그때는 없었다는 偶然의 소치일 뿐이었고, 큰 흠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후로는 아주 일찍이, 창단 후 첫 거사추진 때 의열단운동과 부산사람의 인연이 맺어졌다. 장건상의 조력이 있았디. 다음으로 의열단과 맺어간 부산사람이 박재혁이다. 그리고 그 중매가 된 이는 역시 부산사람이고 박재혁의 친구이기도 하던 김병태이다. 결과적으로 이 두 청년은 의열단운동에의 부산사람의 참여가 장건상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아주 초기부터의, 그리고 적극적인 것이었음을 확실히 보여준 케이스가 되었다.

그 후로도 부산사람의 의열단운동 참여는 많지는 않으나 꾸준히 이어졌다. 의열단이 표면적으로는 사뭇 방황하는 듯이도 보였지만 그 나름의 새로운 노선을 따라서 국내 대중투쟁의 전위조직 건설을 준비해가고 있던 국면에서 그와 결합하고 그 운동에 투신해간 부산사람이 박문호와 박차정 남매이다.

1935년 이후 의열단 해소 시기 이후 몇 몇의 독립운동가들이 변절하는 가슴 아픈 비극을 겪게 되기도 한다. 이에 우리는 독립운동을 계속해서 조명하여 더 밝혀내고 진정 독립운동가의 생애와 사적을 기념하며 기리는 일은 오늘 이 시대에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우리의 책무가 아닐 수 없다.


제2 주제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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