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코리아뉴스] 항일독립운동가 '(사)박재혁 의사 기념사업회' 창립총회 가져 등록날짜 [ 2020년05월26일 20시49분 ] 하성인기자 > 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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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코리아뉴스] 항일독립운동가 '(사)박재혁 의사 기념사업회' 창립총회 가져 등록날짜 [ 2020년05월26일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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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거비 조회 382회 작성일 2020-09-07 15:16:1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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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혁의사의 출신학교인 개성고총동창회와 전국의 뜻깊은 사람들이 모여 불꽃같이 살아간 청년 박재혁의사를 선양'  

 등록날짜 [ 2020년05월26일 20시49분 ]  하성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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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가인 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가 그의 모교인 개성고(부산상고)총동창회와 관계자 및 유족을 중심으로 창립총회를 가졌다(사진제공=(사)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



[더코리아뉴스] 하성인 기자 = 개성고등학교 동창회(회장 이경재)는 지난 5월 25일 부산 서면 홍유단에서는 '박재혁의사의 출신학교인 개성고총동창회와 전국의 뜻깊은 사람들이 모여 불꽃같이 살아간 청년 박재혁의사를 선양'코자  '사단법인 박재혁의사 기념사업회'를 설립하기로하고 향후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민초들로부터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사라져간 많은 독립투사들 중 어느 한분한분이 소중하지 않으랴 마는 독립투사 박재혁 의사는 안타깝게도 직계유족이 없는 관계로 그의 얼이 가려져 왔다고 볼수 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박재혁 의사의 출신학교인 개성고등학교(옛.부산상업고등학교/당시 부산공립상업학교) 동창회에서는 부산을 대표하는 항일독립운동가 박재혁의사(4회 졸업생)의 항일독립운동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롯데그룹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어린이 대공원 내에 동상을 건립했다.

이어 개성고등학교 동창회에서는 그 동안 2019년 '박재혁 의사 평전(김삼웅 作/제7대 독립기념관장)'을 출간했으며, 개성고등학교 교정에 흉상 건립과 개성고등학교 역사관에는 '박재혁 의사 기념관'을 따로 마련하는 등 자랑스런 동문이자 민족 정신의 표상으로 불꽃같이 살다간 청년 박재혁의사를 알리고자 노력해 왔다.

이날 (사)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 설립준비위원회에서는 (사)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를 창립함과 동시에 초대이사장에 이경재준비위원장을 추대하고, 상임부회장에 정연철을 선임했다.

그러면서 (사)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는 차후 ▲생가 복원및 기념관 건립과 ▲동상 이전및 공원조성 ▲훈격 상향 ▲학술연구와 토론회 개최및 국내외 학술교류 ▲정기적 추모 기념식 거행및 기념출판물 제작 배포 ▲초등학교와 중등학교의 교과서 등에 활동사항 수록 반영 건의 ▲독립기념관 내 어록비 건립 ▲기타 위업을 선양할 수 있는 행사와 사업의 추진및 동시대에 활동하였던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위업의 선양 사업 등을 하기로 의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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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박재혁 의사 기념사업회 창립 총회가 열린 가운데 김영춘 전 해수부 장관이 참석, 인삿말을 하고 있다(사진제공=(사)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


우리에게는 낮선 독립운동가지만, 박재혁 의사는 공립상업학교 졸업 후 비밀결사단체인 구세단(救世團)을 조직하여 항일 독립운동을 하다가, 상해로 건너가 독립운동가 김원봉이 이끄는 '의열단'에 가입, 1920년 종로 경찰서에 중국 고(古)서적 상인으로 위장 잠입하여 서장에게 일제의 조선 침탈을 꾸짓은 뒤 폭탄을 터뜨려 서장은 부상을 입고, 박재혁의사는 다리에 중상을 입고 현장에서 체포된 의열단 최초의 성공한 거사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이 사건은 적의 소굴인 경찰서에 적장을 마주하여 일으킨 사건으로 이후 독립운동가 최수봉의 밀양경찰서 폭탄 투척을 비롯해서 독립운동가 나석주의 동척회사 폭탄 투척사건으로 이어져 일제의 조선 침탈에 대한 경종을 울림과 동시에 3.1독립운동 후 침체된 항일독립운동을 다시 불 붙이는 도화선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후 박재혁 의사는 1921년 3월 31일 경성고등법원에서 사형이 최종 확정되었고, 대구감옥 복역 중 사형이 집행되기 전 단식으로 1921년 5월 11일 27세 청년으로 옥중 순국하였으며,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단장(현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박재혁 의사는 안타깝게도 직계유족이 없고 또한 독자적인 기념사업회도 없어 이손녀(박재혁 의사의 여동생의 박명진 여사의 손녀)인 김경은 님이 유족대표로 직접 발 벗고 나서서 뜻있는 단체와 행정기관의 도움을 받아 ‘정기 기념행사’ 개최, ‘박재혁 의사 생가 터 표지판’ 설치 및 ‘부산경찰서 투탄 안내판’ 제막 등 행사를 추진해오는 등 참으로 외롭고 힘든 길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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