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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생방송라디오] 5/14 금 오전 8:30 전화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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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거비 조회 560회 작성일 2021-05-14 00:18:50 댓글 0

본문

 

https://youtu.be/Mb9_i0jPQ6o

3ff895a13604b1f9f474f2b2f9b480db_1620918958_6424.jpg 

△박재혁의사 사후양자 증손자 박준서(34세, 서울)


▶MBC생방송라디오

 5/14 금 오전 8:30 전화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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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혁 의사는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입니더.

박재혁 의사는 일제강점기에 의열단원으로는 최초로

성공한 의거를 이룬 분인데예.

박재혁 의사의 업적을 기리는 작업에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박재혁 의사가 순국한 지 올해로 100주년이 됐는데예.

이번 주에 박재혁 의사 서거 100주기를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도 있었고예.

또 박재혁 의사의 동상을 이전하자는 목소리도 높지예.

관련해서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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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 최동희 사무국장

 

전화 연결 되어 있습니다.

 

어서오십시오.

 

(인사)안녕하십니까? 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최동희 인사드립니다.

 

- 독립운동가, 박재혁 의사는 부산 출신이시죠? 소개해 주시죠.


, 박재혁 의사님은 아름다운 부산, 역사의 도시 부산동구 출신으로 부산을 대표하는 항일 무장투쟁 독립운동가입니다.


-박재혁 의사는 일제강점기에 경찰서장에게 폭탄을 던졌는데요.

그 이후에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 중에 곡기를 끊어 결국 순국하 셨습니다. 이 이야기, 자세히 전해 주시죠.


, 마음속 어디선가 찌릿한 전율이 우려 나오는 안타까우면서도 자랑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지난 512일 오후 2, 박재혁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가 열렸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박재혁 의사 관련 전문가들의 진지한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부산경찰서 폭탄투척 의거 후 사형선고를 받고, 면회 온 그의 절친 소정 최천택 선생님에게 왜놈의 형률로 죽느니 차라리 스스로 죽는 길을 택하겠다며 단식 중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가지고 온 계란 꾸러미를 도로 내밀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이 어머님께는 불효이나 내 뜻을 다 이루었으니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말씀하신 뒤 100년 전 511, 사형집행 하루 전에 순국하셨습니다.

 

- 지난 11일과 12일에 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를 비롯해서 삼일동지회, 부산시교육청, 부산지방보훈청이 여러 행사를 열었잖아요. 11일에는 어떤 행사가 있었나요? 사무국장님께서도 참여하셨죠?


, 해마다 성지곡수원지에 있는 박재혁 의사 동상 앞에서 부산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박재혁 의사 순국 100주년 추념제사단법인 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와 삼일동지회, 공동주최로 열렸습니다.

 

그리고 3월부터 5월까지 청소년들에게 박재혁 의사님의 나라사랑의 정신을 이어갈 청년 박재혁 학교를 가다순회전시회가 부산시교육청의 도움으로 부산시내 초중등학교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박재혁의사 순국 100주기 추모제에는 주로 어떤 분들이 참여하셨나요?

그동안 우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박재혁 의사를 사랑하는 많은 부산시민들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가보훈처 권율정 부산지방보훈청장님, 부산시장을 대신한 이성권 정무특보님, 부산광역시교육청 김석준 교육감님, 광복회 김원웅회장님께서 추념사를~

 

박 의사님의 역사적인 흔적이 담긴 출신지역 최형욱 부산동구청장, 부산경찰서 폭탄투척 의거현장 최진봉 중구청장, 박재혁 의사 동상이 설치된 서은숙 부산진구청장, 박재혁 의사님의 유족과 출신모교인 개성고등학교 정희장 총동창회장님

 

일일이 소개를 다 못했지만 목숨바쳐 나라를 사랑한 박재혁 의사의 숭고하신 큰 뜻을 이어가는 나라사랑의 실천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27세의 청년의 나이로 순국하신 박의사님의 사후 후손인 박준서 증손자께서 참석하여 할아버지의 소중한 목숨을 희생해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가 무엇인지 자라나는 젊은 세대들에게 개인보다 나라를 위한 소중한 정신이 많이 알려졌으면 한다고 했어요.

 

12일에는 어떤 행사가 있었나요?

박재혁 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가 대연동,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세미나실에서 개최되었습니다.

10여명의 발표 및 토론자와 40명의 제한된 초청인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학술회의는 동아대학교 홍순권교수님의 좌장으로 진행되었으며,

 

대구대학교 김영범 명예교수의 의열단운동과 부산 : 의열단 계통의 독립운동가 네트워크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발표를 시작으로 세분의 교수님과 주요 현직 역사관장님들을 모셔서 2시간 동안 열띤 토론이 이어졌는데요

이 과정에서 박재혁 의사에 대한 인적사항, 독립운동내용,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 등이 발굴되어 알려지고, 검정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날 토론자로 참석하신 개성고역사관 노상만 관장님께서는 박의사님이 졸업하신, 지금의 개성고등학교이죠. 부산공립상업학교 제4회로 졸업하셨는데 당시 영주동에 있었던 학교가 1916년 화재에 의해 소실되는 바람에 학적부 등 소중한 자료들이 모두 없어졌다는 안타까운 이야기와

 

당시 일제는 조선인이 단식하다 옥중 순국 했다고 하면, 삼일운동 후 조선민족의 총 궐기할 것을 우려하여 사망원인을 폐병으로 발표하였다는 점과 일제강점기 시대 탄압의 상징적 기관인 부산경찰서장을 만나기 위해 조선옷을 입고, 하시모토 슈헤이 서장이 좋아하는 고서상인으로 위장하여 접근한 사실들을 숨겨온 이면의 이야기 할 때 장내는 잠시 숙연해 졌죠.

 

아무튼 박재혁 의사는 삼일운동 후 꺼져가는 민족혼을 다시 점화시킨 성공한 거사100년 후 오늘, 번영된 우리조국과 나라를 가지게 된 점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 박재혁 의사 순국 100주기를 맞이해서 부산 근현대사와

정신사에서 박재혁 의사의 자리를 명확히 위치 짓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해야죠. 이번 학술회의를 시작으로 많은 전문가들의 연구와 노력이 이어질 수 있는 국가적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번 행사에 많은 도움을 주신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박철규관장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지난번에 자갈치 아지매에서도 한번 이야기한 내용인데요.

박재혁 의사 동상 이전을 추진하고 있죠?

현재는 어떤 상황인가요?


, 제가 말머리에도 말씀 드렸다 시피 박재혁 의사는 그 공적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라는 말씀을 드렸는 데요~

 

그렇습니다. 지금 동상이 위치한 성지곡수원지는 부산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자연공원입니다. 하지만 동상이 너무 외진 산 속 깊숙히 있지요. 걸어서 15분내지 30분 정도~

 

박재혁 의사님의 목숨을 바쳐 나라를 사랑한 마음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가족들이 손쉽게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갈 시민들의 곁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지막으로 부산 시민들께 한 말씀 남겨주시죠.


박재혁 의사의 동상 이전은 어느 한 단체만이 결정할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그래서 박 의사님을 널리 알리려는 뜻을 이해하고, 힘을 모아야 할 듯합니다.

이는 대한민국을 품에 않은 부산시민 모두의 자존심이기 때문이죠. 국가보훈처를 필두로 부산시와 사회단체, 박재혁을 사랑하는 부산 시민들의 뜻을 모아 박 의사님의 숭고한 뜻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사합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 최동희 사무국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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